성소모임

지청원자의 하루

지원기 일곱가지 이야기 : 여섯. 먹고 마시고 듣고 말하고

작성자
자비의 메르세다리아스 수녀회
작성일
2020-11-09 15:49
조회
73


 

지원기 동안 나는, 코로나19로 인해 필리핀 양성 공동체로 가지 못한 탓에, 수녀님들이 피정 사도직을 하시는 광주 노안의 피정집(이사벨 레떼 영성원)에서 살았다.

단체 피정도 있지만 개인 피정자들도 꽤 있고, 피정이 아니더라도 지인들, 마을 사람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다. 특히 개인 피정자들이나 갑자기 찾아오는 사람들은 혼자 시간을 보내기 보다 우리와 앉아서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찾는데, 처음에 나는 그것이 몹시 힘들었다.

불쑥 찾아오는 경우도 허다하고, 앉아서 식사나 간식, 대화하는 게 전부였기에 말이다. 옆에 앉아 있으면 나는 뭘하고 있는 걸까 싶고, 딱히 할 말도 없고,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대개 듣고 있지만, 안그래도 지원기 초기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느라 체력이 달린 상황에서 긴 시간 장황하고 초점없이 늘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이렇게 가만히 마주 앉아 먹고 마시고 듣고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야, 차라리 이들을 더 잘 짜여진 피정이나 심리상담을 소개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거의 지원기 끝무렵 쯤이었던 것 같다. 미사 중 영성체 후 잠시 갖는 침묵 시간 중에 나는 하느님께서, 미사를 통해 말씀과 성체를 통해 나와 바로 그렇게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렇게라 함은...가만히 마주 앉아 먹고 마시고 듣고 말하며 그냥 나와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는 것 말이다. 미사에 대해서 내가 이게 무슨 소용이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저 아름답지 않았던가? 아파도 정신이 블랙아웃되지 않는한 그 분 앞의 내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았던가?

이 시간 이후부터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함께 사는 수녀님들과 늘 하는 식사와 대화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 속의 나의 존재에 대해서도 새로운 감각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성체로 존재하고, 내가 사람들과 먹고 마시고 듣고 말하는 일상이 바로 미사 성제였다. 그러면 미사에 대해서 갖는 내 마음을 모든 이들과 함께 하는 먹고 마시고 듣고 말할 때도 나누어야 하지 않겠는가?...우리들의 일상이 그토록 소중하고 미사처럼 아름다운 것임을 미처 보지 못했다.

"...가서 복음이 됩시다."

(글,그림 : 청원자 송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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