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모임

지청원자의 하루

청원기 이야기 2. 아니 사랑할 수 없다

작성자
자비의 메르세다리아스 수녀회
작성일
2020-12-08 14:23
조회
49


정말 노력하는데 원점으로 돌아온 듯할 때, 누군가를 사랑하기 힘들 때, 받은 그대로 되갚아 주고 싶을 때, 참 힘들지..최근 나에게 다시 이런 위기가 닥쳤었다.



솔직한 마음을 하느님께 말씀드렸다. 누군가에 대한 미움, 거부감, 되갚아 주고 싶은 마음을 조금도 숨김없이 자세하게 말씀드렸다. 차분할 수 없었다. 흥분하기도 하고 화도 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토하고 났는데 아직도 속에 뭔가 남아 있는 이물감과 비슷한 느낌. 그랬다, 사실은, 사실은...하느님, 사실은, 용서 못하는 나, 품어주지 못하는 좁은 나, 그게 속상해요. 하느님, 나는 대체 언제면 당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거예요?!! 이게 대체 몇번째예요, 나는 틀렸어요, 가망이 없어요, 수도자는 무슨, 개뿔...흑흑.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울고 말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하느님은 오늘도 침묵으로, 한없이 깊게, 이런 나와 마주앉아 주셨다. 비둘기처럼 슬피울다 퉁퉁 부은 눈을 들어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그 침묵은 침묵임에도 괜찮아, 내가 있잖아, 괜찮아..했다. 예수님의 침묵, 십자가는 나의 눈물을 닦아주고 미소짓게 했다. 다른 좋은 것을 드리려해도 드릴 게 없어요,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뿐이예요, 부숴진 마음밖에 없어요. 그러나, 하느님 당신은, 당신만은, 바수어진 내 영을 업수이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귀히 여겨주시나이다.



부숴진 마음 사이로 빛이 새어나왔다.

하느님은 그냥 나를 좋아하신다. 조건이란 없었다.



나 어찌 이런 당신을 아니 사랑할 수 있으랴...



기도한 후 그 자매를 마주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당신의 마음이 내 안에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적시고 이제 그녀에게로 흘러갔나보다. 그녀에 대해 가졌던 거북스러운 마음, 미운 마음이 사라지고 그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있었다, 내가. 그러고나자 홀연 그녀의 행동이 그녀의 어떤 가난에서 비롯된 것임이 깨달아졌고, 우리 가난한 존재에 대한 새로운 연민이 돋아남을 느꼈다. 이제는 나를 화나게 했던 그 문제에 대해 대화할 수도, 그냥 침묵으로 포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느 쪽도 괜찮았다, 그저 하느님께서 뜻하시는 대로.



나 어찌 이런 당신을 아니 사랑할 수 있으랴...



(글, 그림: 청원자 송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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