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모임

지청원자의 하루

지원기 일곱가지 이야기 : 다섯,개 밥주기

작성자
자비의 메르세다리아스 수녀회
작성일
2020-11-09 15:49
조회
79


 

이 글은 사실, 개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 수녀원에는 개 두 마리가 있다. 모두가 일주일씩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개밥을 준다. 나는 개를 너무나 무서워하여 이래저래 적응 기간이 주어졌고 그래서 첫 몇 달간은 개 밥 주기에서 면제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나도 개 밥주기를 해야할 시점이 왔다. 그냥도 무서운데 우리로 들어가 홀로 개들에게 밥을 주고 물을 갈아주고 똥을 치우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내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못하겠다고 난리난리를 치다 개 우리로 홀로 들어간 첫 날. 특수복을 마련해 입고 가장 도톰한 고무장갑을 끼고 유사시 도움을 청해야 하니 아이폰을 소중히 품었다. 그런데 나에게 짖고 물고 막 다가와 킁킁댈 것 같은 그들이 그냥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늬가 들어오니?..하는 눈빛. 밥을 주자 찹찹 먹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바들바들 물을 갈아주고 똥을 치웠다. 그리고 황급히 쌩하니 서둘러 개 집을 나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가졌던 두려움에 비해서는 싱겁기 짝이 없었다.

첫날도 둘째날도, 개 당번 일주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한 달, 두 달이 지났다. 개에게 물리거나 경기를 일으킬만한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

아직도 개라는 동물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존재다. 오늘도 밥을 주는 개들은 사실 나에게 '개'라는 동물 일반과 아무 관계가 없다. 나는 다만 '사랑이', '까페'와 아주 조금 괜찮아졌을 뿐이고, 정신 차려보니 그들이 공교롭게도 개였다고 말하는 편이 진실에 가까울 것 같다.

두려움은 대상에 대한 '일반'을 끌어와 나를 방어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는 것 같다. 두려움은 과거 어떤 기억의 단편만을 과장하여 그것이 대상의 전부인 양 믿게 하는 속성이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개에 물린 기억. 두려움은 그래서 내 눈 앞의 고유한 유일무이한 대상이 갖는 아름다움에 눈 멀게 하는 속성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관계 형성을 막아서는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아무리 그래도 살짝 긴장은 하며 까페와 사랑이를 만난다. 몸에 각인된 기억, 이건 참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날은 '이들은 나를 문 그 개가 아니다'..라는 알아차림을 세우게 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용기를 내어 까페와 사랑이의 턱과 등을 쓰다듬어 본다. 그러면 멍하고 영롱한 이들의 눈빛이 보인다. 참 순진무구하기도 하지..! 비록 찰나일 지언정 두려움이 아닌 경이로움을 느끼게 되고, 심지어, 그래, 물어도 괜찮아, 물어봐, 스윽 손을 내밀어도 보며, 평화로워진다.

(글,그림 청원자 송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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